쓰다/수영

수영 Day 16

ㅠㅏㅠㅔ 2021. 8. 27. 13:24

Long Golden Day, Alice Dalton Brown

 

매미가 어느 순간 안 울기 시작했다. 아마 꽤 전부터 울지 않았겠지만 수영 끝나고 나와서 두유 빨아먹으면서 걸어 오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무 밑을 아무렇지도 않게 걷고있다, 고. 매미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니까 바로 안심하고는 잘 걸어다녔구나. 옛말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는데 어쩐지 매미는 반대다. 난 자리는 몰라도 든 자리는 바로 안다. 개싫어해서 그런가. 한 마리씩 매미가 울기 시작하면 언제나 '아, 이제 나무 밑은 걸을 수 없다! 황야의 무법자처럼 쨍쨍한 햇빛 아래에서만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매미들은 유난히 많이 날아다니고 낮게 날아다녀서 나무 밑을 최대한 피해서 다니는데도 매미랑 부딪힐 뻔 한 적이 몇 번 있어서 아침마다 식겁했다. 근처서 같이 걸어다니던 사람들은 나 보고 식겁했겠지... 저 여자는 잘 걸어가다가 왜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라고 욕을 하나 싶어서... 어쨌든 이렇게 올 여름도 얼추 다 보냈다.

 

수영장 가서 수업 시작할 때까지 보통 5분 정도의 여유밖에는 없어서 따로 준비운동을 하고 물에 들어가지는 않고 일단 들어간 다음에 그냥 두어 번 정도 걸어서 왔다갔다 하고만 오면서 적응한다. 이제 들어갈 때는 물 추워서... 오들오들 떨면서 걸어다님... 노는언니 봤는데 정유인 선수가 온수풀에서 수영하고는 물이 따뜻해서 덥다고 해서 오호~ 운동을 하면 덥구나~ 했지만 나는 아직... 운동하고 있지 않아! 덥지 않아!

 

오늘도 계속 팔 돌리면서 오른쪽 팔 저을 때는 머리 물 밖으로 내고 숨 쉬는 법 연습했다. 처음에는 모르겠는데 선생님이 설명해 준 거 보고 대충 이해했다. 그러니까 동작은 총 3개로 나누어진다. 첫번째는 왼쪽 팔 돌리기, 두번째는 오른쪽 팔 돌리면서 허벅지까지 갔을 때 머리를 물밖으로 내 놓으면서 숨을 뱉기, 세번째는 물 밖에서 숨을 들이 마시고 팔을 다시 물 속으로 가지고 오게 돌리며 머리도 물 안으로 넣고 음--- 하기. 나는 세번째 동작에서도 어쩐지 첫번째 동작과 같이 끊김이 없이 유려하게 해야 된다는 그 이미지에 사로잡혀 내가 필요한 만큼의 숨을 쉬기 전에 동작을 빨리 진행해버리고 숨 딸리니까 꼬르륵... 했는데 이렇게 동작을 나누고 나니까 세번째 동작은 그냥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만큼 물 밖에 체류하면 되는 거였다. 일단 유려하게 하는 건 나중 일이고 지금은 이 동작이 몸에 익어야 하니까. 그래서 세번째 동작 때 매우 많은 시간을 들였더니 대충 수영 비슷한 거 하는 것처럼 중간에 꼬르륵 안 하고 올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애플워치 다시 차고 해 봐도 될 것 같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일도 한 번 가봐야지 마음은 먹고 있어서 되면 진짜 차고 가봐야지, 생각하고 있다.

 

중간에 선생님이 나보고 잘 하고 있는 것 같냐고 해서 엄청 자신있게 "네ㅇㅅㅇ!" 했더니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보세요, 아닌 것 같음 왜 물어봤어요, 저기요ㅡㅡ 어쨌든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는데(이렇게 성실한 출석 중에 안 나아지면 인간 X) 옆으로 돌았을 때 발 보폭이 커져서 발차기 한다고 최대한 모아서 발차기 해보라고 했다. 거기까지 신경 잘 안 써지겠지만 의식하라고.

 

팔과 어깨가 너무 뻐근한데 이게 내가 집에서 아령 들어대서인지(하지만 하루에 5분 동안 열 개 듦) 어제 필테 가서 팔운동 해서인지(별로 힘들지는 않았다고 느꼈지만) 것도 아님 수영 가서 팔 저어서 그런 건지(흠...) 모두 다인지... 살 이렇게 빠졌는데도 상체의 사이즈는 거의 변함이 없다는 점에서 정말 압도적 감사... 얼마 전에 옷 정리하니까 바지가 하나도 없어서 거의 단벌신사 수준인데 윗옷 마저 다 없었으면 울면서 다녀야 했다... 근데 수영해서 어깨가 좀 더 펴지면? 그럼 짱이겠다. 현대인은 모두 라숄(라운드 숄더)를 가지고 있으니까 나도 예외는 없고. 하지만 난 어깨가 좀 넓고 각이 좀 잡혀있는데다 쇄골도 예쁘고 넘넘 짱이지. 헤헤... 빨리 수영 짱 잘해서 상체 짱 됐으면... 이제 대중교통에서 더더욱 어깨빵에 밀리지 않는 사람 될테야~!